변호사 칼럼
변호사 이진화가 쓰는 논술·글쓰기·사고법 칼럼.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특수상대성 이론의 공식 E = mc² , 즉 질량과 에너지는 서로를 바꾸며 항상성을 유지한다. 질량이 변하면 에너지가 생기고, 에너지가 과도하면 물질은 이를 배출하며 다시 평형을 찾는다. 그 과정은 때로 안정적이지만, 때로는 거대한 혼란을 동반한다. 핵폭탄처럼 갑작스러운 강력한 에너지의 유입은 거대한
조선의 법제는 의외로 섬세했다. 법을 다루는 사람과 판단하는 사람을 분리해 두었다. 법문을 해석하고 형률을 정리하는 사람은 율관( 律官 ), 즉 법기술자였다. 반면, 형벌을 결정하고 판단을 내리는 사람은 인의예지( 仁義禮智 )를 배운 선비, 즉 도덕적 교양을 갖춘 자였다. 조선의 기본 전제는 단순했다. 법기술은 기술직의
조선의 과거제는 양반만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실제로는 양인, 즉 평민도 응시할 수 있었다. 법으로는 평등한 제도였다. 실제로 몇몇 양인들이 과거에 합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직관적으로 안다. 평민이 과거에 오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음을. 왜일까. 한문으로 된 『사서오경』을 읽고 외우며 깊이
“나는 왜 저 사람처럼 되지 못했을까?”“나는 충분히 노력했는데, 왜 결과는 다를까?” 이 질문은 누구나 한번쯤 품어봤을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성공을 보며 쉽게 자신을 의심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타인의 ‘결과’만 보고 자신의 ‘과정’을 부정한다. 하지만 이때 우리가 자주 놓치는 요소가 하나 있다. “운”이다. 1.
우리는 늘 말한다.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라고. 그 말을 가장 극단적으로 구현한 나라가 있다. 미국이다. 그리고 그 사회를 이상적으로 여기며 따라온 나라가 있다. 한국이다. 그러나 이제 분명히 말해야 한다. 미국식 능력주의는 실패했고, 한국식 능력주의는 그 실패를 더 교묘하고 더 잔인하게 수입했다. 미국
오늘날 우리는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사회’를 이상적인 구조로 여긴다. 어떤 배경에서 태어났든, 스스로 노력하고 실력을 쌓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 말 속에는 치명적인 맹점이 숨어 있다. 능력주의는 공정의 이름으로 불공정을 정당화하고 있으며, 그 결과 현대사회는 새로운 형태의 ‘신분제’로 변모하고
우리는 탄소라는 화학물질로 이루어진 존재다.수십억 년 전, 지구의 우연한 조건 속에서 탄소 기반 분자가 자가복제를 시작했고, 그 복잡한 화학작용은 수많은 우연을 지나 마침내 ‘인간’이라는 생명체로 진화해왔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낸 지능은 이제, 스스로의 경계를 넘어서려 하고 있다. 그 지능은 더 이상 단백질이나 세포 속
법원이 보여준 ‘국민이 원하는 정의’… 그런데 왜 찜찜할까? 최근 이재명 사건과 윤석열 사건을 거치며, 법원이 보여주는 태도는 한마디로 ‘국민이 바라는 정의’ 그 자체였다. 이재명 사건 – 신속하고 공평하며, 더욱 엄격하게 이재명 사건에서 법원은 국민들이 그토록 원해온 세 가지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첫째, 재판